역임한 직위 |
- [ 펼치기 · 접기 ]
- ||
- [ 펼치기 · 접기 ]
독립기구 (선거대책위원회) | 선거대책위원장 | 오구시 히로시 | 선거대책위원장 대리 | 콘도 카즈야 노다 쿠니요시 | 선거대책부위원장 | 키시 마키코 | 상임의결기관 (양원의원총회) | 양원의원 총회장 | 카와다 류헤이 | 대의사회 회장 | 고미야마 야스코 | 중앙당 지도부 | 대표 | 이즈미 겐타 | 대표대행 | 오사카 세이지 니시무라 지나미 | 부대표 (참) | 공석 | 부대표 (중) | 공석 | 당무집행기구 | 간사장 | 오카다 가쓰야 | 간사장 대리 | 테즈카 요시오 다나부 마사요 | 부간사장 | 야마오카 타츠마루 | 오치아이 다카유키 | 아오야마 야마토 | 모리야마 히로유키 | 겐마 켄타로 | 이시카와 카오리 | 혼죠 사토시 | 카츠베 켄지 | 타지마 마이코 | 정무조사회 | 정무조사회장 | 나가츠마 아키라 | 정무조사회장 대행 | 오니시 겐스케 기이 다카시 고니시 히로유키 | 정무조사부회장 | 오구마 신지 | 이나토미 슈지 | 시노하라 고 | 야마자키 마코토 | 오카모토 아키코 | 사쿠라이 슈 | 나카타니 카즈마 | 오누마 타쿠미 | 키시 마키코 | 쿠마가이 요시토 | 정무조사회장 보좌 | 야마기시 잇세이 | 아라이 유타카 | 우메타니 마모루 | 오쓰카 쿠레하 | 코즈 타케시 | 스에츠구 세이이치 | 스즈키 케이스케 | 츠츠이 카나메 | 바바 유키 | 후지오카 타카오 | 후토리 히데시 | 혼죠 사토시 | 야마다 카츠히코 | 요시다 하루미 | 와타나베 소 | 오니키 마코토 | 코가 치카게 | 시바 신이치 | 타카기 마리 | 하타 지로 | 미즈노 모토코 | 미야구치 하루코 | 무라타 쿄코 | 국회조직 | 국회대책위원장 | 아즈미 준 | 국회대책위원장 대리 | 야마노이 가즈노리 사이토 요시타카 | 국회대책부위원장 | 류 히로후미 | 고토 유이치 | 요시카와 하지메 | 모리야마 히로유키 | 노마 타케시 | 겐마 켄타로 | 모리타 토시카즈 | 오쓰카 쿠레하 | 참의원 의원회장 | 미즈오카 슌이치 | 참의원 의원회장 대행 | 마키야마 히로에 | 참의원 간사장 | 다나부 마사요 | 참의원 간사장 대리 | 키시 마키코 | 참의원 국회대책위원장 | 사이토 요시타카 | 참의원 국회대책위원장 대리 | 이시바시 미치히로 모리모토 신지 카츠베 켄지 | 참의원 정책심의회장 | 고니시 히로유키 | 참의원 정책심의회장 대리 | 쿠마가이 요시토 | 고문단 | 최고고문 |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 ◀ 역대 당대표 |
|
-
민주당(일본 1998년) 정책조사회장 | - [ 펼치기 · 접기 ]
||<tablewidth=100%><table bgcolor=#fff,#191919><width=25%> 초대 이토 에이세이 ||<width=25%> 제2대 나카노 간세이 ||<width=25%> 제3대 간 나오토 ||<width=25%> 제4대 오카다 가쓰야 || ||<width=25%> 제5대 가이에다 반리 ||<width=25%> 제6대 에다노 유키오 ||<width=25%> 제7대 센고쿠 요시토 ||<width=25> 제8대 마쓰모토 다케아키 || ||<width=25%> 제9대 나오시마 마사유키 ||<width=25%> 제10대 직위 폐지 ||<width=25%> 제11대 겐바 고이치로 ||<width=25%> 제12대 마에하라 세이지 || ||<width=25%> 제13대 호소노 고시 ||<width=25%> 제14대 사쿠라이 미츠루 ||<width=25%> 제15대 후쿠야마 데쓰로 ||<width=25%> 제16대 호소노 고시 || ||<-4><bgcolor=#ffffff,#191919> ||
|
-
민주당(일본 1998년) 대표 | |
-
| - [ 펼치기 · 접기 ]
||<-5><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bgcolor=#0097d0> 경제산업대신(2001년~현재) || ||<-5> ||<-2><tablewidth=100%><width=20%><bgcolor=#3CA324> ||<width=80%><bgcolor=#3CA324> || || ||<width=40%><-2> 1·2대 히라누마 다케오 ||<width=60%><-3> 3-5대 나카가와 쇼이치 || ||<-5><bgcolor=#f0f0f0,#000> || ||<-5> ||<tablewidth=100%><width=20%><bgcolor=#3CA324> ||<width=20%><bgcolor=#3CA324> ||<width=40%><bgcolor=#3CA324> ||<width=20%><bgcolor=#3CA324> || || ||<width=20%> 6대 니카이 도시히로 ||<width=40%><-2> 7·8대 아마리 아키라 ||<width=40%><-2> 9·10대 니카이 도시히로 || ||<-5><bgcolor=#f0f0f0,#000> || ||<-5> ||<tablewidth=100%><width=20%><bgcolor=#EC1C24> ||<-3><width=60%><bgcolor=#EC1C24> ||<width=20%><bgcolor=#EC1C24> || || ||<width=40%><-2> 11·12대 나오시마 마사유키 ||<width=20%> 13대 오하타 아키히로 ||<width=20%> 14대 가이에다 반리 ||<width=20%> 15대 하치로 요시오 || ||<-5><bgcolor=#f0f0f0,#000> || ||<-5> ||<tablewidth=100%><width=20%><bgcolor=#EC1C24> ||<-2><bgcolor=#3CA324> || || ||<width=20%> 16대 에다노 유키오 ||<width=20%> 17대 모테기 도시미쓰 ||<width=20%> 18대 오부치 유코 ||<-2><width=40%> 19·20대 미야자와 요이치 || ||<-5><bgcolor=#f0f0f0,#000> || ||<-5> ||<-5><tablewidth=100%><width=100%><bgcolor=#E50038> || || ||<width=20%> 21대 하야시 모토오 ||<-2><width=40%> 22·23대 세코 히로시게 ||<width=20%> 24대 스가와라 잇슈 ||<width=20%> 25·26대 가지야마 히로시 || ||<-5><bgcolor=#f0f0f0,#000> || ||<-5> ||<width=20%><tablewidth=100%><bgcolor=#E50038> ||<-4><width=80%><bgcolor=#E50038> || || ||<width=20%> 25·26대 가지야마 히로시 ||<-2><width=40%> 27·28대 하기우다 고이치 ||<width=20%> 29대 니시무라 야스토시 ||<width=20%> 30대 사이토 겐 ||
|
-
- ||
-
-
|
일본의
정치인, 현 중의원 부의장.
1949년 2월 26일,
도쿄도 스기나미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가이에다 시로는
가고시마 출신으로 중국이나 대만에도 체류한 적이 있으며 반리라는 이름도
만리장성에서 따온것이다.
마이니치 신문 기자였으며,
아베 신타로의 상사였다. 도쿄도립 사기노미야 고등학교를 거쳐서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탤런트 겸 경제평론가로 활동하였다.
간 제2차 개조내각에서 경제산업대신을 맡았는데,
돗토리 2구 자민당 아카자와 료세이 의원의 질의를 받다가 눈물을 흘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영상 기사가이에다가 대표로 선출되면서
오자와 이치로가
일본 미래당을 탈당한 것 봐서는
일본 미래당과 합당하는 등의 당 수습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망과는 달리
오자와 이치로의 복당을 불허하면서 오자와 이치로 계파와의 연을 끊으려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3년 7월 예정된
제2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패배하면 사임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선전을 다짐했지만, 선거 전망은 어둡다 못해 암울한 수준이다. 결국 예상대로 참의원 선거는 민주당의 기록적 참패로 끝났다. 선거전에 패배하면 사임하겠다던 약속과는 달리 개혁은 진행중이라면서 사퇴의사가 없음을 드러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민주당 대표직을 맡고 있다가..2014년 12월, 약간 갑작스러운 중의원 해산으로 실시된 선거에서 소선거구 낙선-비례대표로도 국회 입성하는데 실패했다. 당대표가 의원선출도 안되었다는 점에서 입장이 난처해졌고, 선거 다음날 빠르게 사임을 발표했다.
여담으로
인터넷을 비롯한 컴퓨터 IT 분야에
상당히 서먹하다고 한다. 가이에다 대표가 인터넷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일본에서 인터넷 선거가 해금되었음에도 일본 민주당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다행(?)히도 현재는 의원실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이용해 SNS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중.
2017년 10월,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가 열리면서 민진당에서 나와
에다노 유키오 의원이 창당한
입헌민주당 소속으로 공천을 받았다. 선거 결과 자민당
야마다 미키 후보
[1] 도쿄 1구에서 제46, 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2연속 가이에다를 누르고 당선되었던 여성 의원
에 3021표, 1.3%라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중의원에 당선되었다. 2009년 이후로 첫 소선거구 당선이다. 감회가 새로울 듯.
아 놀라워라~! 그런데 피를 말리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당선된데다 정작 패배한 자민당의 야마다 미키 후보도 석패율 비례대표로 살아남았기에 깔끔하게 승리했다고 하기에도 미묘한 상황비단 48회 중의원 선거 뿐 아니라 선거의 승패와 관계없이 늘 표 차이가 크지 않은 힘든 선거를 치러왔다. 42회 중의원 선거에서 2,633표(1.2%)차로, 43회 중의원 선거에서 1,437표(0.6%)차로 아슬아슬하게 당선됐다. 반면 46회 중의원 선거에서는 1,134표(0.4%)차로 낙선했다.
결국
2021년 10월,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야마다 미키 의원 상대로 출구조사에서는 이기는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거의 만 표 차이로 패배했고, 겨우
석패율제로 구제되어 8선에 성공했다.
제49대 중의원의 부의장으로 내정되어 11월 10일 총리 선출투표 직전에 정식 선출되었다. 본인 나이도 이제 70이 넘은지라 사실상 이번 국회를 마지막으로 정계 은퇴로 가는 수순을 밟고 있는 셈.
아사히 신문 · 도쿄대 다니구치 연구실 공동 조사 2017년 중의원 선거 후보자 정보 - 가이에다 반리 |
이슈 | 질문 | 답변 |
개헌 | 헌법 개정에 | <colcolor#333> 조금 반대 |
|
소비세 | 장기적으로 볼 때 소비세율은 10%보다 높아야 한다. | 조금 반대 |
무상교육 | 유치원·탁아소부터 대학까지의 교육을 무상화해야 한다. | 찬성 |
재정 지출 | 당장은 재정 재건을 위한 세출의 억제보다는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투입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 중립 |
격차 해소 | A: 사회적 격차가 다소 있더라도 경제 경쟁력 향상을 우선해야 한다. B: 경제 경쟁력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격차 시정을 우선해야 한다. | 약한 B |
제정 적자 | A: 국채는 안정적으로 소화되고 있어 재정 적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B: 재정적자는 위기 수준이기 때문에, 국채 발행을 억제해야 한다. | 중립 |
부자 증세 | 소득이나 자산이 많은 사람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 | 중립 |
|
치안·인권 |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 정보 보호 및 개인의 권리가 제한되는 것은 당연하다. | 반대 |
동성혼 | 동성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 중립 |
피선거 연령 | 피선거권을 얻을 수 있는 연령을 인하해야 한다. | 조금 찬성 |
외국인 노동 | 외국인 노동자의 수용을 추진해야 한다. | 조금 찬성 |
야스쿠니 |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해야 한다. | 반대 |
원전 재가동 | 원자력 규제위원회의 심사를 통과 한 원자력 발전소는 운전을 재개해야 한다. | 중립 |
탈원전 | A: 지금 바로 원자력 발전을 폐지해야 한다. B: 앞으로도 원자력 발전을 에너지 원의 하나로 유지해야 한다. | 중립 |
부부별성 | 부부가 원하는 경우, 결혼 후에도 부부가 각각 혼전 성을 유지하는 것을 법률로서 인정해야 한다. | 찬성 |
가족관 | A: 부부와 여러 아이들이 갖추어져 있는 형태가 가족의 기본이다. B: 한부모 가정이나 사실혼 등 가족의 형태는 다양한 것이 좋다. | B |
|
핵개발 | 비핵 3원칙[2]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 을 견지해야 한다. | 찬성 |
국방 | 일본의 방위력은 더 강화해야 한다. | 중립 |
선제 공격 | 타국으로 부터의 공격이 예상되는 경우 선제 공격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 | 반대 |
북일관계 | 북한에 대해 대화보다 압력을 우선해야 한다. | 반대 |
'조금·약한'의 답변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면(どちらかと言えば)'이며 '중립'은 '어느쪽도 아니다(どちらとも言えない)'이다. |
일본 정계에서는 친한적인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 시절이던 2014년에는
유흥수 주일대사와 회담을 하기도 했으며, 2018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민단 협회의 신년회에 참석해 원로 및 회원들과 자리를 함께하기도 했다. 또한 2019년에는 일본에서 개최된
한글날 행사에서
송영길,
김부겸 의원과 만났다.
- 2022년 1월 20일 중의원에서 국회 산회(산카이)라고 말해야 할 것을 해산(카이산)이라고 잘못 말하였다. 말해놓고 일어났다가 의원들 반응이 있자, 잘못 말한 것을 알고 바로 돌아가서 정정했다.[3]
의원들은 손짓으로 반자이 삼창을 해주는 것으로 응수했다. 일본에서 중의원이 해산될 때엔 의원들이 만세삼창을 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
소속 | 기간 | 비고 |
세금당
| 1986 - 1992 | 정계 입문 |
| 1992 - 1994 | 입당 |
무소속
| 1994 - 1995 | 탈당 |
시민 리그 | 1995 - 1996 | 창당 |
| 1996 - 1998 | 창당 |
| 1998 - 2016 | 합당[4] |
| 2016 - 2017 | 당명 변경 |
무소속
| 2017 | 입헌민주당 합류를 위한 탈당 |
| 2017 - 2020 | 창당 |
| 2020 - | 합당[5] |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86 | 제1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도쿄도 | 세금당
| 327,444 (6.46%) | 낙선 (8위) | |
1993 |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구) 도쿄 1구 |
| 63,939 (29.15%) | 당선 (1위) | 초선[6] |
1996 |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도쿄 1구 |
| 63,661 (30.39%) | 낙선 (2위) | |
당선 (석패율제) | 재선 |
2000 |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93,173 (41.25%) | 당선 (1위) | 3선 |
2003 |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05,222 (44.60%) | 당선 (1위) | 4선 |
2005 |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01,396 (36.92%) | 낙선 (2위) | |
2009 |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41,742 (47.43%) | 당선 (1위) | 5선 |
2012 |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80,879 (28.91%) | 낙선 (2위) | |
당선 (석패율제) | 6선 |
2014 |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89,232 (35.57%) | 낙선 (2위) | |
2017 |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 96,255 (40.69%) | 당선 (1위) | 7선 |
2021 |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 90,043 (35.43%) | 낙선(2위) | |
당선 (석패율제) | 8선 |